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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토요일에 만난 사람]“AI, 고차원 계산기일 뿐… 결국 사람의 판단이 가장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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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9 / 2,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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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만난 사람]“AI, 고차원 계산기일 뿐… 결국 사람의 판단이 가장 중요”

노벨 물리학상 日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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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는 요즘 부쩍 걱정이 많아진 듯했다. 평화헌법에 손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가려는 일본의 정치 상황이 걱정이고, 과학이 너무 세분화 전문화하면서 대중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그래도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젊은이들은 호기심과 동경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고야=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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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76) 교수는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당시 영어를 못 하는 토종 물리학자, 유머 감각이 탁월한 학자였다. 일본의 교육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화에 대한 신념을 말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평가도 있다. 노벨상을 받은 뒤엔 청년들에게 ‘동경’과 ‘호기심’을 권하는 취지의 책을 여러 권 냈다. 최근에는 안보법 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스카와 교수를 지난달 29일 만났다. 노벨상 수상 이듬해인 2009년 2월 그를 인터뷰한 지 7년여 만이다.

마스카와 교수는 노벨상 수상 이후 모교인 나고야(名古屋)대로 자리를 옮겼다. 나고야대는 2010년 그를 위해 ‘소립자 우주기원연구기구’를 만들어 줬다. 몸담은 이공학관 건물 밖에는 큰길에서도 보이도록 그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2009년의 낡은 방과 비교해 지금 쓰고 있는 방은 넓고 탁 트인 현대식이어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 방에서 그는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우주의 기원을 연구하고 계십니까.

“과학이 갈수록 전문화, 분업화되면서 젊은 연구자들은 자기 연구의 전체 모습을 잡기 어렵게 됐습니다. 제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월 2회 학자들이 모여 세미나를 엽니다. 최신 연구 상황을 점검하고 조언을 하죠. 개인적으로는 동시각(同時刻)에 빠져 있습니다. 물리학에서 시간의 진행 방식이 운동 상태에 의존한다는 이론인데….”

2008년 노벨상을 받은 ‘고바야시-마스카와 이론’은 ‘CP 대칭성 깨짐의 기원 이론’이라 불린다. 1973년 목욕 중에 욕조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이 이론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최소 단위인 쿼크가 자연계에 최소한 3세대(世代) 6개가 있다는 ‘예언’을 담고 있었다. 한 달 만에 6쪽짜리 논문을 완성했다. 이후 세계 물리학자 수백 명이 입증에 매달렸다. 이 논문은 일본인 물리학자의 논문 중 역대 가장 많은 피인용 횟수를 기록했고 2001년 일본과 미국에서 입자 탐지기를 통해 예언이 아닌 ‘과학’이었음이 입증됐다.

―최근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기초 과학에 강한 이유는 무엇이라 보시는지요.

“전후 자유로웠던 학문 풍토와 투자를 들 수 있죠. 한창 연구하던 시절 나고야대는 밝은 기운이 넘쳤습니다. 교수들도 젊었고 의욕적이었죠. 폐허에서 일어서려면 과학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게 사회적 합의였습니다. 기초과학, 물리학의 경우는 정부 지원이 항상 있었습니다.”

마스카와 교수는 평생 여유롭게 살지는 않았지만 연구비 때문에 고생해 본 기억도 없다고 한다.

“먹고살 일이나 미래를 걱정할 일은 없었지요. 다만 요즘 기초과학 연구들은 실험 위주로 바뀌고 있습니다. 1000명 단위의 머릿수는 있어야 진행되고 비용도 억, 조 단위가 듭니다. 경비 따내기에 과학자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려 앞길이 녹록지는 않습니다.”

그가 나고야대에 진학한 이유도 재미있다. 고교 2학년 때 신문에서 이 대학 사카타 쇼이치(坂田昌一) 교수가 획기적인 입자모형을 발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사카타 교수의 연구진에 참여하고 싶다는 동경을 키웠다. 그가 늘 젊은이들에게 ‘호기심’과 ‘동경’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도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 소식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에, 전쟁까지 거치면서 현대사가 발전할 기간이 짧았습니다. 전쟁이나 유신독재 치하에서는 과학이 꽃피기 어려웠죠. 과학이 융성하려면 사회가 안정되고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다만 한국도 이제는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으니 앞으로가 기대되는 상황이죠.”

한국이 노벨상을 노린다면 수십 년 뒤에야 결과가 입증되는 기초과학보다는 의학생리학 등 성과가 상대적으로 빨리 나오는 쪽을 우선시하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의 경우 1973년에 낸 논문으로 2008년에 상을 받았을 정도로 기초과학은 오랜 검증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2012년 줄기세포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彌·54) 교토대 iPS세포연구소 소장은 ‘셀(cell)’지에 결정적인 논문을 낸 때가 2006년이었다. 6, 7년 만에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기초과학은 한 국가가 가진 역량의 종합판입니다. 실용화까지 100년도 걸릴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해야 합니다. 무시하면 그 영향은 수십 년 뒤에 나타나죠. 더디더라도 인적·물적 투자를 해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이세돌 9단을 꺾은 알파고의 소식으로 떠들썩했습니다. 인공지능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물리학의 세계인데, 물리학에서 인공지능은 고차원 계산기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긴 어렵다고 봅니다. 물리학은 어찌 보면 철학이고 어찌 보면 직관의 학문입니다. 가령 저는 요즘 소립자의 마이너스 무한대와 플러스 무한대를 잇기 위한 방법을 궁리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심층 학습을 한다고 해도 주어진 틀 안에서 답을 찾는 한 이런 세계를 넘볼 수는 없습니다.”

그는 “나아가 인공지능이 부분적으로 인류의 직업을 대신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 주인은 사람”이라며 사람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건 과학 전체를 놓고도 말할 수 있는 얘기라고도 했다.

마스카와 교수는 2008년 노벨상 수상식에서 전쟁을 목격한 ‘과학소년’으로서 평화의 소중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일본어’로 연설해 공감을 샀다. 2005년 헌법 9조를 지키는 과학자 모임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지난해 안보법 관련 투쟁 때도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급기야 지난해 여름에는 ‘과학자들은 전쟁에서 무엇을 했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전시에 과학자들이 대량 동원된 역사를 되돌아보고, 현재 일본이 다시 같은 길을 걸어가려 하는 데 대해 경종을 울리는 내용을 담았다. 최근 일본의 정치 상황에 대한 그의 위기의식을 읽을 수 있다.

“과학 연구는 중성(中性)입니다. 인류 행복에도, 전쟁에도 도움을 줄 수 있지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계획, 베트남전쟁에서 암약한 엘리트 과학자 집단인 제이슨 연구단 등 많은 과학자가 군사 연구에 이용됐습니다.”

―현 정권의 방향성이 그렇게 위험하다고 봅니까.

“수상쩍습니다. 평화헌법 9조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사실 2차 대전 패전을 부정하고 싶은 겁니다. 종전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죠. 하지만 이 정권이 헌법 9조에 손을 댄다면 일본 국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

7년 전 만났을 때보다 그는 초조함과 무기력함을 느끼는 걸로 보였다.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로서 막대한 이익을 얻어왔습니다. 사회가 안정돼야 과학도 발전합니다. 왜 굳이 그걸 포기하고 국민을 위험한 길로 몰아넣으려 하는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스승과 제자, 代이은 연구가 이룬 물리학상 9개▼

지금까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일본 국적 수상자는 9명이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오사카(大阪)대 교수가 최초였다. 입자물리학에서 중간자의 존재를 예상한 공로였다.


후 폐허 속에서 신음하던 일본은 첫 노벨상 수상 소식에 열광했다. 이는 선순환을 일으켰다. 일본의 희망은 과학에서 찾아야 한다며 과학과 기술에 힘을 기울이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당장 돈이 되지 않는’ 물리학에 대해서도 지원이 끊이지 않았다.

2008
년 공동 수상자인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 교수와 고바야시 마코토(小林誠) 교수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두 사람이 속한 나고야대 사카타 쇼이치(坂田昌一) 연구실은 유카와 히데키의 반전(反戰)평화 사상을 이어받았다. 연구실의 좌우명은 ‘과학자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이다.

“연구 성과는 오랜 축적의 산물입니다. 우연히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일을 해냈을 뿐이죠. 사카타 연구실의 축적된 연구가 없었다면 새 이론도 탄생할 수 없었죠.”


쟁보다는 협력, 서로를 존중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들은 현대 입자물리학의 중심 개념인 ‘대칭성 깨짐’을 수학적으로 정리해냈다. 마스카와 교수는 고바야시 교수에 대해 “학문적 동반자이자 영원한 콤비”라고 말한다. 그가 독창적 아이디어를 쏟아내면 고바야시 교수는 이를 정리하고 증명해 이론을 정립하는 역할을 했다. 영어를 못 한다며 해외 출장을 거부하는 마스카와 교수를 대신해 국제 학회와 교류하는 일도 고바야시 교수의 몫이다.

2002년 수상자인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 도쿄대 교수, 2015년 수상자인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 도쿄대 교수는 사제 간에 노벨상을 수상한 경우다. 스승은 우주의 뉴트리노 검출에 선구적 공헌을 했다는 것을, 또 제자는 뉴트리노가 질량을 가졌음을 나타내는 뉴트리노 진동을 발견했다는 공로를 각각 인정받았다.


본 정부의 투자도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이 실험에 사용한 중성미자 검출기 ‘슈퍼 가미오칸데’는 건설비로만 100억 엔(약 1060억 원)이 투입됐다. 1990년대 중반 도쿄대 총장이던 아리마 아키토(有馬朗人) 씨는 슈퍼 가미오칸데 건설을 위해 아소 다로(麻生太郞) 당시 자민당 의원에게 “노벨상 2개는 따올 수 있다”고 설득해 예산을 따낸 일을 지금도 자랑스러워한다. 그는
약속을 지킨 셈이다.



▼日 노벨상 수상자들의 숨겨진 뒷이야기▼


 
마스카와
노벨상 논문 쓸 때 교직원 노조위원장 활동

야마나카
외과수술 재능 없어 기초연구로 진로 바꿔

오무라
야간고 교사 하다 제자들에 자극받아 진학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 교수는 스스로를 ‘바람둥이형 인간’이라고 말할 정도로 ‘딴 짓’을 많이 했다. 훗날 노벨 물리학상을 안겨준 논문을 쓰던 시절 그는 대학 교직원노조 위원장까지 맡아 바쁜 나날을 보냈다.

“오전 10시경 학교에 가서 후배인 고바야시 군(2008년 노벨상 공동 수상자인 고바야시 마코토 교수를 지칭)과 2시간 정도 전날 연구 상황을 토론했습니다. 오후 내내 노조 일로 뛰어다녔죠. 오후 7시쯤 귀가해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연구했습니다. 정말 집중이 잘됐어요. 가장 생산적인 시간이었습니다.”

목욕하다가 논문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도 이런 시간대였다. “내가 아는 노벨상 수상자들은 모두 딴짓을 많이 했어요. 엘리트 코스만 밟아선 창의력을 기대하기 어렵거든요.”

마스카와 교수는 최근 대담집 ‘대발견의 사고력’을 함께 펴낸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彌)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예로 들었다. “본래 정형외과 의사였는데 수술을 너무 못해 고민했답니다. 본인 말로 학교에서 (야마나카 대신) ‘자마나카’(‘자마’는 방해를 뜻함)라고 불렸다니까요. 하지만 기초 연구로 진로를 바꾼 뒤 놀라운 성과를 보였지요.”

야마나카 교수는 임상의 생활 2년 만에 사표를 내고 약리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도 줄기세포를 연구해 ‘당장 도움이 되는 신약을 연구하지 않는다’는 핀잔을 들었다. 열악한 연구 환경 때문에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쥐 세포에서 다기능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해 2006년 관련 논문을 발표했고 노벨상까지 움켜쥐었다.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오무라 사토시(大村智·81) 기타사토(北里)대 명예교수도 먼 길을 돌아 연구자가 됐다. 고교 때는 스키 선수를 하느라 공부와 담을 쌓았고 대학 졸업 뒤에는 야간 고교 교사로 일했다. 주경야독(晝耕夜讀)하는 제자들에게서 자극을 받아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미생물을 통해 기생충 번식을 억제하는 약제 원료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마스카와 교수는 “일본에서는 ‘장인 정신’ 운운하며 외길을 깊이 파고, 남의 것은 손대지 않는 칸막이 문화가 강하다. 하지만 그 순간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하는 것, 나는 그게 최고인 것 같다. 결국은 즐기는 놈이 ‘승자’가 된다”고 말한다.

이런 그는 젊은이들에게 ‘자아의 힘(自分力)’을 기르라고 권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흥미가 있는 것을 끝까지 추구해 결과나 성과로 연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며 그가 제시한 10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①이해력을 높이기 위해 국어 능력을 기른다 ②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인다 ③한정된 조건 속에서 지혜를 짜 낸다 ④목표를 높이 설정한다 ⑤당장은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도 힘을 쏟는다 ⑥목표까지의 과정을 즐긴다 ⑦논쟁 속에서 자신과 대화해본다 ⑧긍정을 위한 부정 작업을 한다 ⑨예측해보고 움직인다 ⑩(결론이 내려지면) 결론부터 최초로 다시 돌아가 본다.


:: 마스카와 도시히데 프로필 ::

1940년 일본 나고야 출생
1962년 나고야대 이학부 물리학과 졸업
1967년 나고야대 이학박사, 나고야대 이학부 조수(조교)
1976년 도쿄대 원자핵연구소 조교수
1980년 교토대 기초물리학연구소 교수
1997년 교토대 기초물리학연구소 소장
2003년 교토대 명예교수
2003년 교토산업대 이학부 명예교수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CP 대칭성 깨짐의 기원 발견)
2009년 나고야대 특별교수
2010년 나고야대 소립자우주기원연구기구 기구장
 
나고야=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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