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박성진 처장 칼럼] 인성교육과 지식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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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4 / 1,505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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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3040칼럼] 인성교육과 지식교육
인성교육 제대로 할 수 없어
Farming으로 해야 할 것을
Schooling 과정에 넣으면
학교 본연의 교육목적 훼손
교육에는 두 가지 학습방식이 있다. 하나는 인성교육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식교육이다. 인성교육은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어 가을에 수확을 하는 것같이 긴 시간을 통해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Farming(파밍)’이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지식교육은 근대사회 이후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Schooling(스쿨링)’으로 부른다.
Farming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누군가로부터 감동을 받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매일 생활에 적용하면서 체득되는 교육과정이다. 감동을 주는 사람을 우리는 멘토라고 부른다. 멘토는 직접적이고 자연스러운 접촉이 빈번한 부모나 친척, 학교 교사나 선배, 직장 상사나 동료가 될 수도 있고, TV나 위인전에 나오는 주인공일 수도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존경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모두 1위 부모, 2위 직장 상사라는 결과를 보면, 매일 접촉하는 사람의 멘토적인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 엿볼 수 있다.
Schooling은 서양에서 근대사회가 시작되던 시기에 개인교사를 통한 교육으로 문자와 지식을 독점하던 왕족과 귀족에 대항하여 부를 축적한 신흥 상인계층이 종교혁명 세력과 함께 서민들을 자신의 정치적 지지 세력으로 만들기 위하여 지식의 대중화를 추구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상인들은 학교를 짓고 교사의 월급 등 비용을 제공하였고, 종교개혁자들은 사제계급이 독점하던 성경을 평신도가 직접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이론을 제공하였다. 초기에는 사립학교로 시작하였으나 지식교육은 점점 정부가 공공영역으로 정의함에 따라 공립학교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지식교육의 영향력은 위대하였다. 문자와 지식의 독점이 사라지자 왕족과 귀족의 기득권은 점점 사라졌고 지식의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집단지성의 강력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한 세기도 채 지나지 않아 산업혁명으로 이어졌고 또 다른 한 세기가 지나면서 지식혁명으로 이어졌다. 지식혁명의 결과로 지구가 먹여 살릴 수 있는 인구는 10억명에서 70억명으로 증가하였고, 노동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어들었으며, 기대 수명도 100세를 바라보게 되었다.
인성, 봉사정신, 신앙심, 열정, 비전 등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Farming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인 반면, 고소득의 직업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은 Schooling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두 과정은 서로 다른 것으로 Farming은 좋은 사례들을 발굴하여 기리고 전파하는 문화적인 접근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고, Schooling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교사와 선배들에 의하여 좋은 교과과정을 통하여 전수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Farming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을 교과과정으로 만들어 Schooling의 형태로 교육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인성교육과정을 만들고 담당교사를 지정해서 국가가 인증을 하거나 일정한 봉사 시간에 대해 학생들에게 학점을 주고 봉사정신을 함양하겠다는 시도들을 학교가 하고 있다. 이렇게 한다고 바람직한 인성과 봉사정신이 함양될 수 있을까.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국가가 불신앙에 대해 세금을 책정하면 진정한 신앙심이 생기는 대신 국민 전체가 연극배우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오히려 Farming으로 형성되어야 하는 부분을 Schooling의 교과과정에 넣으면 최고의 지식을 전수해야 하는 학교 본연의 교육 목적이 훼손된다. 학교는 최고의 지식을 가르쳐서 졸업생들이 만족할 만한 직장을 가지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이런 부분들을 깨닫고 우리사회가 건전한 미래사회를 위한 더 양질의 교육을 발전시킬 수 있길 소망해 본다. 박성진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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