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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뉴스웍스외1] ‘대형가속기법’ 시행…전문인력 양성·좋은 일자리 계기 돼야 (첨단원자력/물리 정모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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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5 /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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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형가속기법' 시행…전문인력 양성·좋은 일자리 계기 돼야


가속기를 이용하여 물질의 근본 성질을 탐구하게 된 것은, 아마도 1897년 영국의 J. J. 톰슨 경이 음극선관을 이용하여 전자를 발견하게 되면서부터일 것이다. 

톰슨 경의 음극선관은 비록 현재의 관점에 보았을 때 매우 초보적이기는 하나, 가속기의 모든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다. 전자를 방출하는 음극, 전자의 에너지를 증가시키는 가속 장치, 진공을 유지하는 체임버, 전자의 궤적을 제어하는 편향 시스템, 그리고 형광 스크린에 의한 빔 진단 및 검출기까지를 포함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음극선관 자체가 처음 개발된 것은 그보다 30여 년 전인 1869년 무렵 윌리엄 크룩스 등에 의해서였다는 것이다. 초보적인 가속기가 실제적으로 혁신적인 결과를 도출해 내기까지는 한 세대 정도가 흘렀다는 것이다.

전자의 발견은 현대 사회의 모든 기술적 진보의 출발점이자, 이후 인류 문명의 역사를 바꾼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포항방사광가속기도 1995년 9월 빔라인 2기로 방사광이용연구를 시작한 지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이제는 총 36기의 빔라인을 갖추고 연 7000여 명이 넘는 이용자를 지원하고 있다.

이용자들이 가속기를 활용하여 출판한 연구논문의 평균 IF는 1996년 2.6에서 2024년 13.0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고 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성과를 창출해냈다. 한 세대의 세월을 통해 우리 사회가 꾸준한 투자와 지원을 하고, 연구자들이 지속적인 성능향상과 시행착오 극복을 해나가면서 얻어진 결과물이라 생각된다.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가속기를 활용한 연구가 결실을 맺고, 새로운 응용분야와 이용자 커뮤니티가 자리 잡기까지는 한 세대 또는 30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이 필요한 것 같다. 기술 변화의 주기가 점점 더 빨라지고, 인공지능(AI)이 많은 분야에서 효율을 증대시키고 있는 지금 시대에, 과연 가속기를 통한 성과창출이 가시화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한 세대를 기다리는 것이 가능할까?

가속기 활용 과정에서의 선택과 집중, AI를 이용한 연구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성과창출의 단기적인 속도를 끌어올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30년 이상을 꾸준히 지원하고 연구자들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지구력과 뚝심 또한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과학기술계 전반에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할 텐데, 그중에서 법·제도 마련, 인력양성, 그리고 연구자 처우개선 등이 최근 활발하게 논의가 되고 있다.

먼저 법·제도 기반 마련이다. 법은 예산지원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막대한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대형가속기의 개발, 구축, 운영·활용, 그리고 업그레이드가 안정적이고 일관성있게 이루어지기 위해 필수적이다. 대형가속기는 인프라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대형가속기는 기초과학 연구와 산업적 응용 전반의 기반을 형성하기 때문에, 도로나 공항이 우리사회에 기여하는 역할 이상을 하고 있다고 본다.

최근 '대형가속기 구축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지난 19일부터 시행됐다. 법률에는 대형가속기 구축 및 지원을 위한 정부의 시책 수립과 출연이 가능하도록 하고, 안정적인 부지 확보를 위한 특례 등을 규정하고 있다. 법률 제정 당시 담당부처 장관은 "법률 제정을 계기로 대형가속기 분야 지원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길이 열린 만큼, 연구개발 환경을 두텁게 하여 치열한 글로벌 과학기술 패권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다. 정치적인 상황 변화에 상관없이 이 법의 취지가 향후 잘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대형가속기의 개발, 구축, 운영·활용, 그리고 업그레이드는 결국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지속가능한 성과를 위해서는 제도 마련과 더불어 인력 양성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대형가속기법에도 이러한 부분이 담겨져 있다.

포항방사광가속기의 운영이 30여 년을 넘어가면서 경험 많은 초창기 인력들이 다수 은퇴를 했고, 또 은퇴를 앞두고 있다. 반면, 예전만큼 쓸만한 신진인력을 구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대형가속기는 종합과학이고 거대과학이기 때문에, 개별 대학 또는 개별 교수 연구실에서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형가속기와 학교 간의 연계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파견 절차나 학생들에 대한 신분보장, 처우, 병역관련 사항 등이 연구소별로 상이하거나, 연구 주제 및 연구소 내 학생지도 책임자 선정이 다소 알음 알음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대형가속기 연구소의 우수 연구원들이나 보직자들에게 교수 직위를 부여하여, 학교와 연구소 모두에서 안정적인 신분과 권리를 보장받으면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게 한다.

대형가속기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은 무엇일까?

실력과 인성 등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지면 물론 좋겠지만, 그중에서 협업 정신과 서비스 정신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대형가속기는 빔물리, 자석, 고주파, 진공, 진단, 제어, 빔라인, 검출기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진 '오케스트라'와 같다. 이용자들이 주어진 빔타임을 통해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함께 문제점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문인력 양성과 커플링이 되어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좋은 일자리'이다.

대형가속기가 좋은 일자리라는 입소문이 나면, 우수한 신진인력 공급 문제는 어쩌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도 있겠다. 좋은 일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안정성이 보장돼야 한다. 처우도 중요하다. 절대적인 급여 수준도 물론 중요하나, 내부적으로 또는 외부적으로 비교했을 때 연구자 본인이 공정하게 대우를 받는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형가속기에서 일하는 연구자들에게는 자긍심이 중요할 것이다.

반도체 회사 TSMC와 활발히 협력하고 있는 타이완의 방사광가속기 Taiwan Photon Source(TPS)의 경우, 대학교수보다 오히려 빔라인 과학자에 대한 처우가 좋고 더 선호하는 일자리라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었다. 대학에서는 다룰 수 없는 최첨단 장비를 가지고,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하며, 동시에 국가 경제에도 기여한다는 자긍심이 한몫했으리라 짐작한다.

연구자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형가속기 연구소의 장기적 비전이 공유되어야 하며, 역사와 전통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주인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이용자들도 대형가속기 연구자들의 기여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필요할 것이다.

방사광가속기와 같은 대형가속기 시설은, 건축에 비유하자면 건물의 기초가 되는 초석과도 같다.

건물의 외관이나 내부 인테리어는 유행에 따라 바뀔 수 있겠지만, 초석은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

대형가속기 시설은 대부분 비수도권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 균형발전과 지역 R&D 연계,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인재 육성 등에 큰 기여가 가능하다. 바둑에 있어서 포석을 통해 돌을 넓게 퍼뜨려, 좁은 이득보다 넓은 잠재력과 세력 확장성을 극대화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겠다. 초석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포석이 잘못되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우리나라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초석 및 포석이 되는 국내 대형가속기가 지구력과 뚝심을 가지고 발전하여, 국민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레거시를 만들어나가기를 진심을 담아 응원한다.

이 글은 '방사광 과학과 기술' 2025년 가을호에서 발췌했다.

[정모세 포항공대 물리학과 및 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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